관촌 조진우의 평양 유람과 횡권 형식 평양도

Gwanchon Jo Jin-u’s Journey to Pyeongyang and Hand Scroll Paintings of Scenic Spots in the City
  • 박정애

초록

조선시대 평양은 국방과 외교, 경제 부문의 핵심 축이자 관서지역의 거점도시 였다. 18세기 이후에는 상업과 무역이 흥성하면서 세간에서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유람지로 부상하였다. 역대 왕조의 자취가 서린 역사도시이자 한양 다음가 는 대도시로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성한 고장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한 것 이다. 1826년 봄, 우연한 기회에 평양을 유람한 觀村 趙鎭祐(1793~1865)는 왕복 여 정에서 지은 시와 여행일기, 실경산수화 2폭을 모아 횡권 형식의 《西京紀行》을 제작하였다. 그 중 일기체 기행문인 西遊日錄에는 평양을 오간 경로와 일정, 개인적 감회가 정리되어 있다. 전라도 김제에 살고 있던 조진우가 같은 양주조씨 집안의 인사인 心菴 趙斗淳(1796~1870) 일행과 함께 평양을 여행함으로써 평소 마음에 품고 있던 소망을 이루었던 것이다. 당시 조두순은 평양서윤으로 재직 중 인 부친 趙鎭翼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조진우는 의주대로를 이용해 평양을 오 갔고 10일 동안 현지에 체류하였다. 그는 평양에서 명승고적을 탐방하고 몇 차례 연회에 참석했으며, 白日場 행사도 참관하였다. 그는 연회에서 관람한 呈才 종 목과 기녀들의 이름 및 특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그 내용은 당시 명성이 자자 했던 평양의 歌舞樂과 기녀들의 활약상을 전한다. 《서경기행》에는 평양의 경관을 담은 <西京圖>가 실려 있다. 화면에는 평양성 과 대동강 일대에 자리한 문루와 누정, 그리고 역사 유적 등이 재현되었으며, 조 진우가 서울로 돌아온 직후 ‘芭園’이라는 호를 쓰는 화가에게 주문한 그림이다. <서경도>와 같은 두루마리 형식의 平壤圖는 이미 17세기부터 제작된 것으로 추 정된다. 그러나 현전하는 작품은 대부분 19세기에 제작된 사례들이고, 공통적으 로 수묵 위주의 분방한 필치가 적용되었다. 따라서 공적 용도보다는 사적 기념품 혹은 감상용 그림으로 제작된 듯하다. 화면에 조진우의 유람 일정과 동선을 충실 히 반영하고 있는 <서경도>가 그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요컨대 조진우의 《서경 기행》은 19세기 전반 향촌 선비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평양 유람의 열기와 실상을 엿볼 수 있는 실증적 자료로서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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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관촌 조진우의 평양 유람과 횡권 형식 평양도
제목 (타언어)
Gwanchon Jo Jin-u’s Journey to Pyeongyang and Hand Scroll Paintings of Scenic Spots in the City
저자
박정애
DOI
10.17647/jss.2021.08.84.1
발행일
2021
저널명
서울학연구
84
페이지
1 ~ 37